[ESSAY] 엄마 나라가 가난할까봐 걱정했다는 루카스
조선일보 \| 2011-12-13

18개월 때 스웨덴 입양, 학창 시절 내내 주눅들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도우려 사회복지사 돼…
지난여름 두 아이 데리고 방한 눈부신 발전 자랑스럽지만
해외입양이 여전히 많은 이유 이해할 수 없어

지난여름, 가족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 소냐(14)와 루카스(11), 내 아이들에겐 첫 한국 방문이라 매우 소중한 여행이었다. 보통 관광객들처럼 명동과 동대문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왕궁과 박물관·캐리비언 베이에 놀러 갔으며, 갈비와 떡볶이를 먹었다. 청계천을 구경하러 간 날, 아들 루카스가 징검다리를 뛰어다니다 말고 내게 말했다. "한국이 가난하지 않아서 참 좋아. 난 엄마 어렸을 때처럼 엄마의 나라가 가난할까 봐 걱정했거든." 목소리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엄마의 나라를 방문하면서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다.

1970년생인 나는 생후 18개월 때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서울 인사동에서 발견됐고 입양기록에 남은 내 이름, 그러니까 보육원에서 붙여준 이름은 김영지다. 스웨덴의 평범한 가정에 입양된 나는 역시 한국에서 입양된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은 나와 남동생 둘뿐이었다. 친구들은 검정 머리에 눈이 작은 우리에게 "너흰 어디에서 왔니?"라고 물었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나는 학창시절 내내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내가 뭔가 부족한 아이라는 생각에 슬펐고, 매일매일 울고 싶었다. 내가 스웨덴 국제입양국(MIA)의 사회복지사가 된 것도 그 아픔 때문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평생 갖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 내가 그중 한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연대하며 일하고 싶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왜 버려졌고 스웨덴으로 입양을 오게 되었는지 얘기해줬다. 1970년대 나의 부모는 매우 가난했을 것이다. 국가는 가난한 가정을 일일이 도울 힘이 없었고, 그래서 나를 비롯한 수천 명의 아이들이 새 나라, 새 가정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나와 동시대의 아이들은 분만의 통증을 겪는 조국을 남기고 떠났다. 그 후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통해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은 엄청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에 여전히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미혼모(未婚母)의 아이들이다. 많은 미혼모들이 사회의 도움만 있다면 아이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제2의 조국'이 된 스웨덴에서는 미혼모도 자기 아이를 낳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아동복지와 주택보조, 무직자들을 위한 국가보험 등 저소득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혜택을 정부가 마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입양인들은 자기가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면 생모(生母)로부터 버려진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된다. 아이를 가슴에 품고,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나 또한 임신 중에 엄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첫 아이를 낳아 품에 안았을 때 내가 무엇을 잃고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 내 삶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엄마를 잃은 서러움도 함께 맛봤다.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를 버리고 살 수 있을까. 자기가 낳은 자식을 기르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불행한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교육하고 그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의 제일 큰 소원은 입양서류에 '불명(unknown)'으로 기록돼 있는 엄마를 찾아, 내가 이렇게 잘 자라 아이들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서울 여행 중에 딸 소냐가 말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할머니가 계실 수도 있지 않을까?"

스웨덴에는 한국의 미혼모를 돕는 '민들레'라는 모임이 있다. '스웨덴 입양인의 대모(代母)'이자 '아름다운 인연'의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킴 스코글룬드가 주축이 된 민들레에는 나를 비롯한 입양 여성들, 그리고 스웨덴 여성들이 후원자로 활동한다. 한국에도 이렇게 미혼모를 돕는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미혼모들이 자기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지 않고 스스로 키울 수 있게 복지정책이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혈연으로 이뤄진 전통가족 외에도 입양으로 구성된 가족, 한부모 가족도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벌써부터 언제 또 한국에 갈 거냐고 묻는다. 스스로 반(半)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소냐와 루카스는 친구들이 K-pop과 한국영화, 그리고 김치를 맛있게 먹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다른 입양인 자녀들을 만날 때는 마치 친척이라도 되는 듯 서로에게서 특별한 유대를 느낀다. 한국을 더 잘 알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가족의 프로젝트다. 또 하나의 바람은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이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의 모든 자식들을 마음 문 활짝 열고 품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비사 킴·스웨덴 입양인/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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