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공식'에는 미숙했던 '숫자 천재들' 목록으로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 이상수 기자 | 2003.03.15
인간의 지성이 절대 고르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장 강하게 주는 학문은 수학이다. 수학자는 보통 사람들에게 화성에서 오기라도 한 듯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로 비친다. 『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은 이 거리감을 좁혀줄 만한 읽을거리다. 일본 <엔에이치> 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저본으로 삼은 이 책은 수의 질서에 매료당한 아홉 명의 천재들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다.

벌어들인 돈을 셈하는 데 매료당한다면 모를까, 세제곱의 덧셈으로 이뤄진 방정식에 답이 있느냐 없느냐 따위에 매료당한다는 건 아무래도 보통사람과 두뇌의 주름 구조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자신 수학자인 지은이 후지와라 마사히코 오차노미즈여대 교수는 영국의 아이작 뉴턴, 프랑스의 에바리스트 갈루아, 아일랜드의 윌리엄 해밀턴, 러시아의 소냐 코발레프스카야, 인도의 스리나바사 라마누잔, 독일의 헤르만 바일, 일본의 세키 다카카즈 등 ‘천재 수학자’란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들의 고향이나 성장했던 곳, 공부했던 학교 등을 직접 방문하고 자료를 모아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복원해 보여준다. 뉴턴(1642∼1727)과 세키(1639∼1708)를 제외하면 나머지 일곱은 모두 19세기 이후의 수학자들이다.

천재 수학자라 해서 평생을 시계불알처럼 살다 갔다면 우린 크게 실망할 것이다. 지은이가 열어 보여주는 천재들의 삶은 과연 보통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스무살 때 이미 미적분, 만유인력의 법칙, 빛에 관한 이론 등 세 가지 위대한 이론의 단서를 발견한 천재 뉴턴은 30년 가까이 연금술 연구에 몰두했고,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을 아무런 증명 없이 세 권의 노트에 빼곡이 남기고 33살의 젊은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뜬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은 점성술과 꿈 해몽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경건한 힌두교 신자였다. 수학과 모순되어 보이는 신념체계조차 이들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은 아니었다. 정작 이들의 자유로운 사유를 옥죈 건 시대와 사회의 편견이었다. ‘군이론’이라는 새로운 수학 분야를 연 갈루아(1811∼1832)는 17살에 스스로 ‘순환 연분수에 관한 정리’를 증명해냈으나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는 그의 논문을 두 번이나 분실했다. 무책임하고 권위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은 이 젊은 천재가 21살에 요절하도록 몰아갔다. 위장결혼도 불사하며 수학 연구의 길을 찾아갔던 러시아의 천재 수학자 소냐는 ‘여성’이라는 굴레에 매여 삶을 소진당했고, 1943년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한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낙인 때문에 모멸을 겪고 끝내 삶을 파멸당했다. 지은이가 책을 통해 전해주려는 건 결국 수학공식도 천재성에 대한 찬양도 아닌, 치열한 삶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와의 불화인 듯하다. 천재성은 그 첨예함으로 인해 시대와의 불화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였을 뿐이다.